Blog entry by Joon Sam

Anyone in the world

그런 날이 있습니다. 
아침부터 일이 하나같이 꼬이고 점심에 이르러서는 세상이 나를 향해 돌진을 해오는 듯 하다가 저녁 쯤에 가서 ‘설마 이것까지...’ 하는 것마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그런 날 말입니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그런 운수 없는 날 많은 한국 사람들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매운 음식을 찾는다고 합니다.  물론 술을 마신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술을 제외한 음식중에 이야기한다면 많은 분들이 매운 음식을 먹는다는 것에 동의하실 것입니다. 여러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스트레스를 받은 날 캡사이신이 잔뜩 들어간 매운 음식을 먹으며 괴로워 하면서도 동시에 스트레스가 풀린다며 좋아하는 아이러니한 장면들을 간혹 보게 됩니다. 도대체 매운음식과 스트레스 해소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정말 과학적으로 스트레스와 매운 음식은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우리 몸은 여러가지 호르몬들이 다양하고 즉각적인 육체적 스트레스와 감정 변화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우리에게 포괄적인 통증 혹은 고통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정신적, 감정적, 혹은 육체적 스트레스를 통틀어 말하는 넓은 의미의 정의입니다. 우리가 정신적, 감정적, 혹은 육체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의 몸은 이를 ‘통증’으로 받아드립니다. 스트레스나 통증이 오랜 시간동안 계속 되면 우리는 일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런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우리 오감은 스트레스 자극을 받는 즉시 뇌에 있는 시상핵(Thalamic Nuclei)으로 스트레스, 즉 통증이 생겼다는 정보를 전달합니다. 시상(Thalamus)은 시각, 촉각, 후각, 미각, 청각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자극들을 우리 몸을 중앙 관리하는 대뇌피질(Cerebral cortex)로 전달하는 곳입니다. 스트레스 자극이 보고 되면 중앙관리자인 대뇌는 이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해 엔도르핀과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게 됩니다.

엔도르핀의 원래 이름은 내인성 모르핀 (endogenous morphine)입니다. 이를 줄여 엔도르핀 (endorphine) 이라고 부릅니다. 모르핀은 보통 병원에서 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들에게 처방하는 진통제입니다. 중독성이 강한 마약류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중증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경우에만 처방됩니다. 의료기관에서 이용하는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처럼 진통효과를 갖고 있는 엔드르핀은 우리 몸에서 스스로 분비될 뿐 만 아니라, 그 효과는 1:1 비교시 대략 모르핀의 약 800배에 달하는 엄청난 천연 진통제입니다. 어느 학술지에 따르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에 최고의 고통 중 하나라는 산통을 겪는 산모에게서 엔도르핀의 분비가 최고조가 된다는 연구결과가 보고 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엔도르핀은 통증이나 스트레스로 우리 인체가 쇼크상태를 일으키지 않게 하기 위해 증세를 억제시키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운동을 하거나, 레저를 즐기는 것들 역시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의 입장에서는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엔도르핀이 분비됩니다. 이 때문에 엔도르핀의 분비를 적절한 운동 후의 즐거움에 의한 호르몬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와는 반대로 엔도르핀은 운동에서 생겨나는 통증을 줄여주기 위한 호르몬인 것입니다. 천연적으로 체내에서 분비되는 것이지만, 그 성분이 마약류와 동일하기 때문에 이 역시 중독성을 갖습니다. 격한 운동을 한 후 느낄 수 있는 쾌감때문에 운동을 계속하게 되는 운동 중독증, 번지점프, 스카이 다이빙 등에서 오는 스릴을 계속 즐기고 싶어하는 익스트림 스포츠 매니아들 역시 이러한 엔도르핀 분비에 대한 중독증세로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은 날 매운 음식을 즐기게 되는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으로 풀이가 됩니다. 매운 맛은 실제로 혀가 느끼는 통증과 관련되어 있고, 소화 기관내에서도 매운 기운에 의한 통증은 전반적으로 통증과 연결되어 엔도르핀 분비를 유발하고, 그로 인해 진통, 스트레스 해소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스트레스와 관련된 또 하나의 물질은 전쟁터의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아드레날린(adrenalin)입니다. 아드레날린은 엔돌핀과는 다르게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아니고, 신장 위에 위치한 부신(adrenal glands)이라는 내분비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자 신경전달물질입니다.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은 하나의 세포에서 생성되어 다른 세포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호르몬은 중추신경계에서 분비를 결정하는 것과 달리 신경전달물질은 신경계 말단에서 생성되어 수용체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물질을 말합니다. 아드레날린은 쉽게 말하자면 인체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우리 몸에 사용 가능한 모든 에너지를 그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에너지로 변용시키는 물질인데, 중추신경계에서 분비를 결정할 수도 있지만, 중앙으로부터의 보고체계를 무시하고 신경말단부에서 바로 분비될 수도 있는 물질인 것입니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시작하면, 온 몸은 중추신경계부터 말단신경계까지 모두 전투 태세를 갖추게 됩니다. 심박수를 증가시키고, 폐활량을 극대화시킴으로써 혈액을 모든 근육들에 최대한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비상체계를 구축하고, 통증이나 스트레스에 즉각적으로 필요한 생리현상이 아닌 소화기관의 활동량을 최소화하는 작용도 합니다. 매운음식을 먹었을 때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것은 물론 매운 음식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아드레날린 분비의 부작용이 함께 하기도 합니다.

엔도르핀과 아드레날린 분비가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라면, 스트레스를 받음으로써 바로 이러한 호르몬들이 분비될 수 있다는 것인데, 왜 우리는 매운 음식을 먹어서 분비를 촉진하려고 할까요? 사실, 모든 일들이 처리되는 과정과 비슷하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대뇌피질을 자극해서 엔돌핀이나 아드레날린을 분비 하기까지는 여러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직접적인 통증이 가해지는 육체적 스트레스와는 달리 감정, 이성이 상황을 분석해 보려하기도 하고, 과연 이 상황이 정말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인지를 인지해 나가는 과정이 이어지는 동안 직접적인 호르몬 분비는 늦어지게 됩니다. 매일 일어나는 스트레스가 그 날 따라 조금 더 있는 정도라면 대뇌피질을 자극하기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미 호르몬들이 분비되어야 하는 충분한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스트레스에 무뎌진 감각이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때 매운음식을 먹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매운 음식의 섭취는 직접적인 육체적 통증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정신적인 자극보다 육체적인 자극은 훨씬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신호를 대뇌에 전달합니다. 캡사이신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음식을 먹고 매워서 어쩌지 못하는 상황을 극심한 통증으로 접수한 대뇌는 상황을 완화시킬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을 즉각적으로 분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저 드라마나 영화의 연출신, 혹은 흔히 우리가 하는 행동들의 이면에도 이런 생물학적 비하인드 스토리가 종종 담겨있습니다.  뭐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어 하루종일 짜증으로 가득한 날, 눈물나게 매운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것도 하나의 스트레스 해소 전략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매운 음식을 남들보다 좋아해서 먹는게 아니라, 스트레스를 해소시킬 호르몬이라는 체내의 군사들을 불러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보다는 적절한 운동이나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여가활동을 즐겨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