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entry by Joon Sam
방사선 이야기 시리즈 1편 : 위대한 가족의 숨겨진 희생, 퀴리 패밀리
방사선(Radioactive rays)이란 에너지가 높아 불안정한 원자, 또는 원자핵으로부터 방출되는 에너지의 흐름을 말하는데, 이 방사선의 에너지가 매우 높아 위험하기도 하지만, 잘 이용하면 X-ray, 방사선 암치료 등에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방사선이 발견되고,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한 가족의 엄청난 노력과 희생이 있었는데요 바로 퀴리부인으로 잘 알려진 마리 퀴리(Marie Curie, 1867-1934)와 그녀의 가족들 이야기입니다.
마리 퀴리는 폴란드의 가난한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여학교 졸업 후 부유한 농가의 가정교사를 하면서 지내다가 기회가 생겨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수학 학위를 취득하고 1894년에 연구 동료인 프랑스인인 피에르 퀴리(Pierre Curie,1859-1906)와 결혼하여 프랑스국적을 취득하게 됩니다. 두 부부는 헨리 베퀘렐(Henri Becquerel, 1852-1908)과 함께 방사능 물질인 라듐(Radium, 88Ra)을 세계 최초로 발견하고, 그를 연구한 업적으로 190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수상합니다. 이때부터 이들의 연구 결과덕분에 세계는 방사능, 방사선에 관련된 많은 내용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남편인 피에르 퀴리는 활발히 연구를 하던 1906년 마차에 치이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39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되지만, 남편의 사후에도 마리 퀴리는 방사선에 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한 결과 라듐과 폴로늄의 발견, 그리고 그의 화합물에 관한 연구로 1911년 노벨 화학상까지 받게 되면서,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모두 수상하는 엄청난 업적을 이루게 됩니다.
퀴리가족들의 방사선 연구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 퀴리부부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그들중 첫째인 이렌 퀴리(Irene Jolit-Curie,1897-1956)가 부모의 연구를 이어받아 방사선 연구의 참여를 하게 되고, 1925년에 퀴리의 연구소에 조수가 된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Jean Frederic Joliot-Curie,1900-1958)와 1년여의 연애 끝에 이듬해인 1926년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 들은 부모님의 연구를 이어받아 방사선에 대한 연구를 계속한 결과 1934년 세계 최초로 방사능 동위원소 물질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는 데에 성공을 하고, 그 업적으로 1935년 노벨 화학상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두 세대의 퀴리 가족들이 세개의 노벨상을 휩쓸면서 방사선의 특징과 그 현상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밝혀내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당시는 방사선의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탓에 모두들 마지막에는 방사선에 의한 질병으로 고생을 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마리 퀴리는 너무나 많은 양의 방사선에 지속적으로 피폭된 결과 골수암, 백혈병, 재생불량성빈혈에 의해 고통을 받다가 1934년에 요양원에서 죽었고, 그의 딸인 이렌 퀴리 역시 백혈병으로 1956년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렌 퀴리의 남편인 프레데리크의 사망원인은 공식적으로는 수술후 합병증이라 되어있지만, 그의 몸도 방사선에 의해 많이 손상되 약해져 있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교통사고로 사망한 피에르 퀴리를 제외하면 연구에 참여했던 모든 가족들이 방사선에 의한 암, 백혈병 등으로 사망한 것입니다. 이렌퀴리의 동생이며 퀴리부부의 둘째 딸인 이브퀴리(언론인)가 미국으로 이민해 102세까지 장수하다가 2007년에야 생을 마감한 것을 보면 퀴리가족들의 삶이 방사선 연구에 의해 얼마나 희생당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시 방사선에 의한 급격한 발견과 연구로 인한 불행은 퀴리가족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라듐과 같은 방사성 물질은 그로부터 방출되는 방사선때문에 사진을 찍어보면 형광 물질같은 것이 발광되어 아름다운 빛을 내는 것처럼 보이는 성질때문에 신비한 물질처럼 여겨져서 아무런 근거없이 미용이나 심지어는 정신장애를 치료하는 마법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소문들이 퍼져 당시 일반인들에게 매우 사랑받는 물질이 되어버렸었습니다. 심지어 라듐이 들어간 화장품이라면 날개 돋힌듯 팔려나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방사선은 금새 그 악마의 얼굴을 들어내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방사선 물질에 노출된 사람들이 죽어가기 시작하면서 그 심각성이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방사선에 의한 피해를 듣게 된 마리 퀴리는 요양원에서 본인도 죽어가던 시기에 라듐의 발견을 매우 후회하며 고통받다 죽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X선촬영, 원자력 발전 등을 통해 삶에 유용하게 쓰이고는 있지만,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기도 한 방사선. 그를 처음으로 발견하고 세상에 꺼내 온 퀴리 패밀리. 이들은 정말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일까요? 그 방사선을 더욱 더 잘 연구하여 안전하면서 유용한 방향으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들이 그들의 연구를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실수로 만들지 않을 유일한 방법일 것입니다.
필자의 전공의 핵물리학과 의용물리학이다보니 후쿠시마 원전사고이후에 그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곤 합니다. 그래서 이번 칼럼부터 3회에 걸쳐 방사선이야기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이번 칼럼은 방사선에 대한 소개글로 방사선 발견에 대한 과학사적 이야기를 말씀드렸고, 2편에서는 방사선에 대한 좀 더 과학적인 접근, 그리고 마지막 3편에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그후에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 보고자 합니다. 제한된 지면에 설명드리기에 매우 심도깊은 이야기들이기는 하지만, 쉽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풀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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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시리즈 3편 :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