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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 Sam - Tuesday, 11 February 2020, 5:3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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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튼, 라이프니츠, 그리고 미적분학의 삼각관계

뉴튼(1642~1727), 라이프니츠(1646~1716), 그리고 미적분학(Calculus)는 살면서 한 번쯤 들어 볼 법한 유명한 과학자, 수학자이고, 수학과목의 이름입니다.  어쩌면 라이프니츠라는 이름이 생소하신 분들이 조금 계실 수도 있겠지만, 그는 수학사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독일의 천재 수학자입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뉴튼은 라이프니츠와 동시대에 살았던 영국의 천재 과학자이지요. 그렇게 두 사람은 17세기의 가장 유명한 과학자와 수학자인데,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자 악연의 고리가 바로 미적분학입니다.  과학 분야, 수학 분야에서 그렇게 중요한 미적분학이 “피타고라스의 정리”처럼 “‘누구의’ 미적분학”이 되지 못한 사연이기도 하지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뉴튼과 라이프니츠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대에 미적분학을 발명해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영국과 독일에서 각각 동일한 개념인 미적분학을 발명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소위 저작권, 표절 시비가 불거지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 두사람은 처음부터 서로에게 악의가 있는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아니, 그들의 글들을 보면 이 저작권의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는 서로가 서로를 동시대의 최고의 과학자, 수학자로 자주 칭송하곤 하였습니다.

일단 시기적으로 미적분학에 대한 아이디어를 먼저 생각해 낸 사람은 뉴튼이 맞다고 합니다. 그는 1675년에 미적분학에 대한 개념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후에 라이프니츠 역시 독자적으로 미적분학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두 사람은 동시대 인물이기는 했지만, 라이프니츠가 유명해지기 시작할 무렵 이미 뉴튼은 영국 왕실학회의 회장을 역임하고 있을 정도로 저명한 인물이 된 때였습니다. 그러기에 라이프니츠는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해서 뉴튼과 상의를 하기 위해 1676년부터 편지를 주고 받으며 미적분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고 합니다. 물론 라이프니츠가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지만, 이 편지내용들에 따르면 라이프니츠가 뉴튼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고, 서로가 동등한 입장에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서로가 상대방의 연구를 존중하고 격려하는 그런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문제는 1684년 라이프니츠가 미적분학을 정식으로 공표하면서 벌어집니다. 

평소에 라이프니츠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던 한 수학자가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은 뉴튼의 생각을 가로챈 표절이라고 공격을 했고, 이 때부터 뉴튼을 추종하는 자들과 라이프니츠와 함께 하는 자들의 의견충돌로 이어져, 끝내는 뉴튼과 라이프니츠 마저도 그 싸움에 말려 서로를 험담하고 자신이 “원조”라고 싸우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는 뉴튼과 라이프니츠의 사후까지도 계속 커져 끝내는 영국과 독일 양 국민들간의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져버리기까지 했다니 당시에는 꽤나 유명한 사건이었던 것이지요.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는 미적분학의 아이디어를 최초로 낸 것은 뉴튼이지만, 학문으로 정립하고 발표하여 실용화한 것은 라이프니츠가 맞다고 보는 것이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아무래도 과학계의 사람들을 뉴튼의 편에 서고, 수학계의 사람들은 라이프니츠의 손을 들어주곤 합니다. 손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으니까요. 

그러면 뉴튼은 왜 그런 아이디어를 바보같이 먼저 발표하지 않고 묻어두었다가 이런 표절시비를 일으키게 된 것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혹자들은 이것이 뉴튼의 피해 망상증때문이라고 분석을 하고는 합니다. 뉴튼은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자라면서 약간의 피해망상증을 갖고 있었는데, 그의 유명한 프리즘 실험에 대한 결과를 2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영국왕립학회에서 발표할 때 당시 학회의 거장들인 호이겐스와 같은 과학자과 엄청난 논쟁에 휘말리게 되는 경험을 합니다. 사실 지금의 현대 과학으로 보면 빛이 입자의 성질을 갖는다는 뉴튼의 주장이 옳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빛은 파동의 성질만을 갖는 다고 굳게 믿었던 호이겐스 등의 당대 과학자들에게 엄청나게 시달리면서 피해망상증의 증상이 심해지면서 연구결과 공표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가능한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하지 않으려고 하는 성향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사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뉴튼의 힘의 3대 법칙이라는 것이 적힌 “프린키피아(원제: 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라는 논문도 뉴튼의 법칙에 관한 설명을 들은 헬리(Halley)라는 과학자가 설득하고 출판비까지 직접 내겠다고 종용하며서 거의 등떠밀리듯이 쓴 논문이라는 것이지요.  재미있는 것은 이 프린키피아라는 논문은 직접 읽어보면 엄청나게 어렵게 쓰여진 논문인데, 이게 뉴튼이 일부터 최대한 어렵게 쓴 것이라고 합니다. 일부러 어렵게 써서 ,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해 시비를 걸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는데, 자신의 의견에 대해 딴지 거는 사람들에 대해 뉴튼이 얼마나 병적인 알러지반응이 있었는지를 잘 알려주는 일화라 할 수 있습니다. 

어쨋든, 이렇게 대단한 학문도 완전히 독립된 두 사람이 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걸 보면, 우리가 듣기엔 완벽한 표절같은데 절대 표절한게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이야기하는 작곡가나 가수들을 보면 그들의 이야기를 믿어줘야 하는 걸까요? 뭐, 개인적으로 크게 믿음이 가지는 않지만 말입니다.